당시 포탈 사이트로 가장 인기가 많은 사이트는 토종 포탈인 심마니 (http://www.simmani.com)였다. ‘한글과 컴퓨터’의 ‘자연어 처리팀’에서 개발한 서비스였다. 하지만 당시 ‘한글과 컴퓨터’는 매우 심각한 경영 위기에 빠져 있었다. '아래아 한글' 개발을 포기하고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투자를 받겠다고 발표하자 ‘한글과 컴퓨터’를 살리자는 국민적 운동이 일어 날 때였다. ‘한글과 컴퓨터’는 ‘심마니’를 포기하고 몇 달 뒤 ‘데이콤’에 매각을 한다. 야후 코리아는 야후의 브랜드와 경쟁자의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호재를 통해 불과 3개월 만에 1위 사이트로 등극하게 된다.
현재 1위 포탈인 네이버는 당시에는 없었다. 현재 2위 포탈인 ‘다음’은 ‘한메일’을 통해 이메일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주력 사업은 아니었다. 기업 대상으로 ‘인트라웍스’라는 프로그램을 개발 해 홈페이지와 게시판을 만들어 주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었다.
야후 코리아는 6개월 만에 1위로 등극했지만 2000년대 초반 ‘다음’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긴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해 초부터 진행된 정리해고로 상당수의 직원이 야후를 떠났다. 지난 주에는 SK텔레콤이 운영하는 ‘11번가’에 ‘야후 쇼핑’ 운영권을 넘겼다. 쇼핑은 포탈에서 매우 중요한 수익모델이다. 쇼핑뿐만 아니라 또 다른 수익모델인 광고와 게임 모두 외부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야후 코리아’가 진출한지 12년이 지난 지금 과거와 같은 위상은 찾아 보기 힘들다. ‘야후 코리아’의 위상이 한국 내 서비스보다는 ‘아시아 태평양’ 지원 조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소문도 있다. 야후 코리아의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트위터 주소: http://twitter.com/doimoi
야후 코리아 오픈 후 3개월만에 1위로 등극했다. 이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이다 . (98년 1월 사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넷 패권 한국으로 넘어오나? (14) | 2009.11.30 |
---|---|
같은 듯? 다른 듯? 인터넷과 웹의 차이는? (7) | 2009.11.17 |
뒷북 치는 인터넷 검색, 실시간 검색이 뜬다 (9) | 2009.10.20 |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의 성공 전략 (6) | 2009.09.30 |
인터넷 단속을 향한 정부의 무리한 욕심 (8) | 2009.09.14 |
야후 코리아 12주년의 빛과 그림자 (7) | 2009.08.31 |
트위터, 미투데이 그 치명적 위험성 (41) | 2009.08.24 |
우리에게 왜 Web2.0은 없는가? (18) | 2009.08.10 |
트위터 초기부터 사용해 보니 (부제: 트위터 발전사) (6) | 2009.07.16 |
인터넷 트랜드 누가 만드는가? (10) | 2009.06.22 |
컴퓨터와 TV의 싸움 누가 이길까? (12) | 2009.06.05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야후는 오버추어를 갖고 있잖아요. 우리나라와 일본만 '오버추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는 모두 야후라는 이름이 사용합니다. 한국 내에서 오버추어와 야후를 분리해서 본다면 오버추어가 야후의 100배 넘는 매출이라고 하네요. 다음과 네이버의 키워드 광고 수익의 일부를 오버추어가 가져가는 이상 야후코리아는 여전히 튼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도 우리나라와 일본만 오버추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계자 말에 의하면 전 세계 오버추어 사이트 중에 한국이 순위권 안에 든다고 하더군요. 이 조금만 나라에서 오버추어가 한국에서 돈을 쓸어 보이고 있는 것이죠.
원래는 야후가 모회사의 개념이고 오버추어가 자회사 개념인데 국내만 꺼꾸로 되어 있자나요.
예전에 야후와 라이코스가 TV에 광고하던때가 생각나네요. 야후우우~~ 하던 광고와 라이코스의 검정 강아지가 TV화면에 자주 나타나곤 했었는데...
네. 저도 생각 나네요. 야후~ 하던 생각 그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와서 게임하던 CF도 생각 나네요 ^^
야후코리! 애증어린 회사.. 창립전에 많은 일을 했건만..염진섭이란 브랜드만 남겼던.. 그당시 제리양. 마사요시가 왔다하면 인터뷰, 골프라운딩에 줄을 서려던 대기업들..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왔지요 심마니가 몇년에 걸쳐 이룩했던 100만페이지뷰를 오픈 1개월만에 달성..기라성이 되었지만.. 가지가지 사유로 이젠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뿐입니다...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네요. 야후가 국내 시정을 평정하고 한동안 변하지 않을거 같았는데 .. 얼마 못 가더군요.
야후에 좋은 인재들 많았지만 너무도 느린 의사 결정 시스템 때문에 지금과 같이 된거 같습니다. 지금도 많이 바뀐거 같지는 않지만 카테고리 명칭 하나 수정하는데도 5개월 걸리더군요. 그것도 대단한 작업이라고... ( 당시에 제가 야후에 면접을 보았다가 떨어졌거든요. ㅋㅋ. 아픈 기억이기에 당시 상황이 잘 기억 나네요ㅋㅋ )
아름다운